눈을 맑게 하는 영양식 화성 바지락 칼국수
 

화성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잘하기로 유명한 고을은 많다. 그러나 바지락 자체의 품질로 치자면 화성 궁평리와 제부도 바지락이 제일이라고 화성 사람들은 말한다. 이곳의 깨끗한 바닷물과 썰물이면 3~4km까지 펼쳐지는 넓은 갯벌 덕분에 바지락이 유난히 맛이 진하고 쫄깃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아예 ‘화성바지락’은 다른 바지락과는 구분해 팔기도 한다. ‘꼬부랑 할머니가 바늘 귀 밝다’란 말이 화성의 갯벌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며 자주 쓰이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나 상황에서 오히려 뜻밖의 재주나 묘수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허리가 굽을 정도의 노인이 바늘귀에 실을 꿸 정도로 시력과 손 끝 균형 감각이 좋다니 놀랄 일이다. 그러나 이는 화성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화성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라면 일평생 갯벌에서 일한 사람임을 뜻한다. 물이 빠질 때 마다 바지락이며 고둥, 동죽, 각종 조개 등의 갯벌 생물을 캐다 보니 허리와 어깨가 새우처럼 굽어버렸지만 그 대신 신선한 것들을 끼니때마다 먹게 되었으리라. 그 가운데 돈이 되는 것은 내다 팔고 제일 흔한 바지락은 남겨 국도 끓이고 죽도 해 먹었으니 절로 시력과 근력이 좋아진 것이다.

바지락은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하므로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타우린이 풍부해서 피로를 회복시키고 시력을 좋게 하는 영양이 가득하다. ‘바지락 먹으면 눈이 좋아지고 힘이 난다’는 것은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였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널따란 갯벌의 지평선을 보고 또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습관이 좋은 시력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바지락을 끓여 나눠먹고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며 수평선의 낙조를 시계 삼아 사는 것. 몸은 고되지만 눈이 밝고 정신이 맑은 화성 갯벌에서의 삶이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다.

팔도장사꾼들이 손꼽는 장터음식 용인 백암순대국, 모듬순대
 

용인 백암순대국, 모듬순대

 

용인 백암면에는 지금도 5일장이 선다.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무려 120년이나 같은 자리에서 장이 섰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가 하루 150마리 넘게 거래될 정도로 북적이는 큰 장으로, 우시장과 도축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주변 농부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른 소를 데리고 나와 값도 매겨보고 남의 소랑 몸집 비교도 해보며 소 키우는 자부심과 즐거움을 나눴다. 그러다 임자가 나서면 소를 팔고 뜨끈한 돼지 내장으로 만든 국밥 한 그릇에 약주를 마시며 소 떠난 아쉬움과 거래의 즐거움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리고 양도 푸짐하고 소화가 잘되게 하기 위하여 돼지 내장 안에 우거지를 넣어서 만든 것이 지금의 순대가 되었다.

순대국밥은 고기가 흔했던 백암장터의 아낙들이 모여 함께 순대를 만들고 돼지 국물을 부어 팔았던 것이 팔도장사꾼들에 의해 전국으로 소문이 번지며 유명해졌다. 백암순대는 다른 지역의 순대보다 양배추나 계절 야채 등 훨씬 야채가 많고 순대 소 속에 선지와 갖은 양념 등이 들어가며 재료가 성글고 거칠었는데 이는 아무리 소를 키우고 돼지를 쳐도 고기 한 점 씹기 힘든 장터 사람들에게 고기 씹는 행복과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장터 아낙들의 배려였다.

판 벌여놓고 늘 마음 바쁜 장사꾼들은 어디서나 뜨끈한 국물에 밥을 토렴(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히는 것)하여 한 그릇 후딱 먹을 수 있는 국밥을 즐겼다. 속이 풍성한 백암의 순대국밥은 온갖 장터 입맛을 아는 그들 입에도 별미였고 성찬이었다. 이렇게 전해져 온 용인 백암 순대는 내장에 갖은 야채 및 속을 넣어 익힌 음식으로 소장에서 흡수가 빠르고 철분 공급원으로 빈혈에 좋은 영양식품이다. 10년 전 백암장의 명성을 만들었던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백암순대의 명성만은 그대로 남아 소를 팔아 거금을 손에 쥔 날이라도 돼지 국물과 돼지 부속물로 배를 뚱뚱하게 채운 순대 한 그릇에 행복해 했던 소박한 낭만을 전한다.

물길따라 전해진 강원도의 맛 여주 천서리 막국수
 

여주 천서리 막국수

 여주는 온갖 특산물과 재화가 몰려드는 요지였다. 뱃길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던 강원도의 특산물들이 하루 쉬어가는 나루였으며 여주와 이천의 맛좋은 진상미(米)가 출발하는 곳이었다. 배를 빌어 탄 장사꾼들과 나무해 나르는 벌목꾼, 과거 보러 가는 서생들까지 한데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었던 셈이다. 황포 돛배가 머문 곳은 신륵사 앞의 조포나루와 이포대교자리의 이포나루. 수많은 황포 돛배가 물건과 사람내리기를 기다리며 떠있는 장관이 연출되던 곳이다. 한강의 대나루 가운데 2곳이나 여주에 몰려 있었던 것을 보면 여주가 과거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주고 받을 화폐가 부족했던 그 시절엔 나르던 물건이 돈 대신 요긴하게 쓰이는 노자였다. 그 가운데서도 메밀가루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없는 품목이었다. 강원도에서 출발한 메밀은 남한강을 따라 국밥이며 탁주, 잠자리 등과 교환되면서 여주에도 막국수가 흔해졌다. 그 중 이포나루지척의 천서리에서도 막국수는 집에서 흔히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1960년 무렵 근방에 야트막한 산들이 많은 천서리에 해마다 사냥철이면 사냥꾼들이 밀려들었고 민가에 들어가 갓 잡은 작은 짐승을 내밀며 ‘막국수라도 한사발 말아주구려’하는 일이 잦아지며 아예 막국수를 파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단다. 그 후 천서리를 지나는 도로가 개통되고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로 여행을 오가면서 그 길목에 있던 천서리에 들러 막국수를 먹고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며 천서리 막국수는 강원도 못지 않은 유명세를 탔다. 시원한 동치미의 오묘하고 깊은 맛과 톡 쏘는 듯하면서 입을 화하게 하는 특별한 막국수 소스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이 하나의 막국수촌으로 형성되어 매년 막국수 축제까지 열리기도 했다.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포보 옆에 위치하여 막국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주 메뉴는 메밀 막국수와 편육. 어느 집은 막국수가 어디는 편육이 더 좋다며 인터넷 미식가들끼리 논쟁을 벌이는데 일부러 찾아가 먹어볼 만한 맛이라는 결론에는 모두 이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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