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코 광장의 99m 종루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전경. 아래 왼쪽이 두칼레궁전이고 위쪽 멀리 보이는 길쭉한 섬이 리도섬, 더 위쪽 바다가 아드리아해다. '물의 도시'답게 오가는 선박이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물의 도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가면 카니발' '영화제' '비엔날레' 등등. 이탈리아 동북부의 도시 베네치아를 말할 때 붙는 수식어다.

이런 말들에는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하는 대역사를 이루어내고 1,500년 동안 이를 유지시켜 온 베네치아인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누구나 한번 보면 사랑에 빠지는 도시이지만 슬프게도 지금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곳.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찾아가봤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베네치아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특이한 도시다.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도시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섬이 아닌데 '섬'이 됐다는 의미에서다. 서기 6세기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망망대해 갯벌뿐인 바다 위에 섬을 만들고 이를 다리로 연결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운하가 도시 내부의 지역을 이어주는 길이 됐다. 현재 베네치아 석호 지역에 있는 섬의 숫자는 118개, 다리는 400여개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이탈리아 본토와 연결된 5㎞ 다리를 기차나 버스·자동차를 통해 건너 이 도시에 들어온다. 베네치아 시내에서는 자동차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동할 때는 걷거나 배를 타게 된다. 또한 대부분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후 수상버스를 타고 산마르코광장에 도착한다. 베네치아 여행의 시작이다. 
현재의 베네치아 도시는 지난 16~17세기에 형성된 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산마르코 광장. 도시의 중심이자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터이기도 하다. 

산마르코광장에서는 우선 99m 종탑에 올라간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멀리 북쪽의 이탈리아 본토와 남쪽의 아드리아해도 들어온다. 베네치아 관광 최성수기인 최근에는 한시간 이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하니 참고할 것.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어 금방 오르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를 관광객들이 즐기고 있다.

종탑 맞은 편에는 두칼레궁전이 있다. 중세시대 베네치아가 독립 공화국일 때 국가원수인 '도제'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외관은 흰색과 분홍의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를 합쳐놓은 곳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이다. 18유로라는 싸지 않은 입장료이지만 베네치아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꼭 방문해볼 곳이다.

산마르코성당은 신약성서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마르코의 납골당으로 세워진 성당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졌는데 현재 모습은 11세기에 리모델링한 것이다. 두칼레궁전에서 바다 쪽을 보면 다리 하나가 있고 사람들로 늘상 붐빈다. 이름하여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것인데 17세기에 세워졌다. 다리 건너 감옥이 있었는데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가면 다시는 바깥세상을 보지 못할 것을 탄식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400여개 베네치아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리알토 다리다. 배로는 쉽게 닿지만 걸어서 가려면 꼬불꼬불 미로 같은 길을 지나야 한다. 아치형 대리석으로 만든 이 다리는 16세기 작품으로 베네치아의 주요 두개 섬을 연결해주는 핵심 통로다. 과거에는 이 다리 주위로 주요 상점가들이 밀집해 있어 상업·금융가로 불렸다. 지금은 보석상 등 명품 가게만 붐빈다.

베네치아에는 3개의 주요 교통수단이 있는데 수상버스·수상택시, 그리고 곤돌라다. 멋진 복장의 사공이 모는 곤돌라가 가장 낭만적이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덧붙여 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인 작가가 쓴 베네치아 역사서 '바다의 도시 이야기'가 유명세를 타면서 한때 베네치아가 '바다의 도시'로 불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중세시대 지중해를 누볐던 강국으로서의 '국가' 베네치아에 맞는 용어로 지방의 관광도시에 머문 지금에는 '물의 도시'가 더 어울리지 않나 한다. 

 

  • 400여개 베네치아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리알토 다리. 중세시대에는 주위가 상업·금융가였지만 지금은 명품가게만 붐빈다.

보통 베네치아 본섬만 둘러봐도 하루가 빠듯하지만 시간을 더 낼 수 있다면 인근 섬도 보는 것이 좋다. 주요한 섬으로는 부라노와 리도가 있다. 부라노섬은 베네치아의 특산품인 레이스 장식품으로 유명한 곳으로 레이스 장식품을 직접 생산하는 여러 상점과 레이스 박물관이 볼만하다. 수상버스로 1시간가량 걸린다. 리도섬은 매년 여름 베네치아영화제(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베네치아가 들어앉은 석호와 '큰 바다' 아드리아해의 경계가 되는 길쭉한 섬이다. 분주한 석호 쪽 선착장에서 내려 10여분 걸어가면 반대편 지중해(아드리아해)를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는 겨우 50년 남았다(?)=베네치아에 들어서면 처음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이 섬이 곧 가라앉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개 건물들의 1층은 비어 있고 바닷물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 

전문가들은 관광객의 급증이 베네치아 도시의 지반침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수상버스 등 선박의 프로펠러가 물속을 휘저으면서 도시의 지반을 깎아내고 있는데 관광객이 늘면서 선박운행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수로에 보이는 수많은 말뚝은 바로 흙들이 쓸려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기둥이다. 

기본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최대 피해자 중에 하나가 베네치아다. 수면이 점점 높아지면서 겨울철 우기에는 도시가 침수되기 일쑤다. 기자는 여름과 겨울, 2번을 이 도시를 방문했는데 실제로 겨울의 풍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러한 속도로는 50년이 채 안 돼 도시가 아예 물속에 가라앉은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베네치아 시민들도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지난 1980년대 12만명이 넘었던 상주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5만5,000명으로 떨어졌다. 오는 2030년이면 상주인구가 전혀 없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폭등과 일자리 부족이다. 관광객이 늘면서 부동산 소유자들이 주거용 아파트를 수익률이 더 높은 호텔로 바꾸고 있다. 

비싼 임대료에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남는 일자리는 관광객 상대 식당 종업원과 곤돌라 사공밖에 없는 셈이다. 반면 교통의 발달로 당일치기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관광객들의 소비도 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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