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때면 목숨의 주인을 찾듯 ‘명의?’를 떠올린다. 불로초나 신의 경계까지도 넘나드는 듯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는 신비의 명약이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찾아다니는 대상이다.

명의?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먼저 어떤 의미로 우리곁에 있는지 살펴보자. 명의란 병을 썩 잘 고쳐서 널리 이름이 난 의사나 의원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그래서 명의와 관련된 방송과 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이 귀를 쫑긋거린다. 암 등 중병에 걸려 생사가 위태롭다고 느끼면 명의에 대해 더욱 간절해지고 화타 또는 허준 등 역사 속의 명의를 떠올리며 그런 명의가 현재 없음을 몹시 아쉬워한다.

과연 그들은 명의였는가? 과연 명의는 존재하는가? 병으로 고통의 끝인 완치와 죽음 등 결론에 서게 되면 명의에 대한 판단은 완연히 다른 결론을 얻게 된다.

의사란 무슨 뜻일까? 의사(醫師)라는 한자는 기사(騎士), 무사(武士), 기사(技士)등에 붙은 선비 사(士)가 아닌 스승 ‘사(師)’자가 붙어있다. 다시 말해 가르치는 선생을 뜻한다. 의사의 영어 Doctor역시 docere라는 라틴어에게 기원한 것으로 'to teach'라는 가르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명의란 병이 낫도록 환자나 보호자를 잘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이 더 합당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잘 가르쳐야 명의라 할 수 있는가? 수술 방법이나 약 제조 방법? 그런 것은 환자가 아닌 의사가 되려는 학생이 배울 내용 중 하나이고 또 그걸 배울 만큼 시간적 심리적 육체적 여유도 없다. 그렇다면 약 복용 방법? 고치려고 준 약을 잘못 복용하여 화를 입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물론 잘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약 먹는 법, 수술법, 약 제조법 등을 배워서 잘 적용하여 모두가 병이 낫는 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정 반대이다. 현재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거의 모든 이들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치료법의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고 또 경제적 여유가 높아지면서 그 밖에 수많은 대체요법과 건강 요법을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중증 질병 발생과 사망률은 늘어가는 현실을 볼 때 위와 같은 방법은 질병의 치유에 별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치료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의사들 역시 그리 멀지 않아 환자가 되고 벌써 환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도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란 환자가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방 또는 한방 의사들이든, 침술가이든, 자연요법가이든 자신들이 처방하는 수술, 약, 한약, 침과 뜸, 그리고 약초 등을 건네주면서 한결 같이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정성을 다하라, 술과 담배 그리고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라, 그리고 과로나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편히 하라’ 등 과거의 병 만드는 삶과 단절하고 건강한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동시에 처방한다.

만약 후자의 처방을 가볍게 여겨 게을리 하거나 삶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뿐만 아니라 병은 더 심해진다. 그 때 사람들은 그 의사나 치료사를 돌팔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반면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환자나 보호자가 열심히 삶에 변화를 준다면 의사나 치료사들이 주로 처방한 물질이나 방법과 크게 상관없이 병은 호전된다. 이 때 사람들은 그들을 명의라고 치켜세운다.

이러한 진실을 깨달은 성인들은 한결 같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인간은 병을 치료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의사는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진정한 의사는 내 몸 안에 있다. 내 몸 안의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은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다.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히포크라테스-

암 환우들 속에서 잘 알려진, 뉴스타트 건강법을 창시한 엘렌지 화잇은 ‘참된 의사는 교육자이다. 의사들은 회복시키는 능력이 약에 있지 않고 자연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질병은 육체의 조직이 건강 법칙을 범한 결과로 생긴 상황에서 벗어나고 하는 자연적 현상이다. 깨끗한 공기, 햇빛, 절제, 휴식, 운동, 적당한 식사, 물의 사용,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것들이 참된 치료제이다. 자신의 사명에 성실한 의사는 환자들에게 그들의 고통의 원인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라고 의사라는 선생이 환자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을 말한다.

자연요법가 된 외과 의사 얼릭 윌리암스 역시 "의사란 선생을 말한다. 의사에게 주어진 최우선 의무는 어떻게 하면 낫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두려움에서 온다. 의사의 첫 번째 의무는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질병이란 정신적인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이 일으키는 역겨운 습관이다. 낫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일하게 할 것은 잘못되게 하고 있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라고 환자의 생활습관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임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유(韓愈)는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의혹을 풀어준다. …중략….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師者,所以傳道, 授業, 解惑也.……道之所存,師之所存也)"라고《스승에 대한 설(師說)》을 통해 스승의 참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애석하지만 화타나 허준는 명의라기보다는 명 치료사에 가깝다. 찌르고 투여하고 자르고 태우고 지지는 일은 참 의사의 근본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치료해 줄게’, ‘나만이 너를 치료할 수 있어!’ 라는 오만을 드러내는 것은 치유의 도를 깨달은 참의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해져 고통 받던 혈우병 여인이 예수 자신의 옷자락을 잡은 뒤 치유된 것을 안 뒤 그 여인에게 예수는 내가 치료해주었지? 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평안히 가라’라고 말한다. 겸손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렇다. 치유하는 힘, 자연치유력은 본래 모든 생명체 안에 있다. 그 힘을 방해하지 않으면 치유는 내 몸이 저절로 알아서 한다(spotaneous healing). 자신이든 타인이든 우리가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야 작동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 힘을 방해해온 습관과 태도를 멈추는 것이다.

물론 수술, 약, 한약, 약초, 침과 뜸, 그리고 수많은 자연요법 중 일부가 덧붙여지면 치유가 좀 더 수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환자 스스로 삶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억압되었던 우리 몸 안의 의사는 다시 힘을 내 일을 시작한다.

결국 의사나 치료사를 돌팔이로 만들 것인지 명의로 만들 것인지 여부는 거의 전적으로 환자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진정한 명의는 의사가 아니다. 치유의 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몸 안의 치유력을 믿고 맡긴 환자 자신이다.

부족하게 가르쳐 하나를 가르쳤어도 열을 깨닫고 실천하는 환자의 주치의는 명의가 되어도 올바르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열을 가르쳤어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 환자의 주치의는 애석하지만 명의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진정한 명의란 자신의 의술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배우고 환자를 진정으로 대하는 자세부터가 시작이다. 그 다음은 환자에게 자신이 배운 의학적 지식에 따라 검사, 수술, 투약, 관리등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다.

바로 환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병을 아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명의 중에 명의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병원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의 의술에 대한 판단은 의사 스스로가 하고 환자는 자신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으로 병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더욱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란 것이 상당수 환자들의 의견이다.

선생님! 선생님! 의사 선생님!의 가치는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판단과 순서가 결국 불신의 벽을 더욱 키우고 만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A의원의 경우 환자의 질병앞에서 똑같은 수평선상에서 함께 한다. 초진의 경우 30분 이상의 시간을 단 한사람의 환자에게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설명하고 이해 시킨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병의 근원과 이유, 치료의 방법 등 관련 질병에 대한 설명이 1:1로 이루어진다. 환자의 궁금증에 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시켜준다. 수술을 잘하고 임상경험이 풍부해 때로는 최신 의료기기보다 판단이 앞선다는 그 어떤 의사와 의술을 자랑하는 명의도 그와 마주하면 부럽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의대를 나오고 우리나라 최고라는 대학병원을 거친 의사다. 하지만 그가 대하는 자세 만큼은 진정한 명의란 예기를 절로 하게 한다는 것이 환자들의 마음이 말해준다.

환자의 눈높이에서 자신이 배운 의술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의술을 배푸는 의사의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의사 자신도 결국은 병마 앞에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의술앞에 서게 될 것이다.

환우들이여! 당신의 병을 고쳐줄 명의를 애타게 찾고 있는가? 바로 당신 몸 안에, 당신 마음에 명의 중에 명의가 있다. 그것도 수백 명의 명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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