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마음과 자부심이 담긴 삶을 살고 싶다. 그런 믿음을 아레나가 소개해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도불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런 기쁨을 나누고 싶다. 
환경이 삶을 바꾼다고 믿는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공간을 설계하고, 마당의 기능에 주목한다. 그리고 마당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한옥을 짓는 세 남자를 만났다.

◆ 조정구 | 구가도시건축
한옥 호텔 경주 라궁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가회동 소안재, 진관사 등을 건축했다.

 

↑ 2012년 건축한 종로구 가회동의 하선재다. 마당을 중심으로 각 공간들이 연결된다.


북 촌로의 한옥 길을 따라 삼청동 고개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조정구의 건축사무소 구가도시건축이 보인다.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잠시 주변을 구경했다. 사무소는 북촌로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올라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 맞닿아 있다.

골목은 세 채의 한옥으로 둘러 막혀 있는데, 골목 가운데 평상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가 드나들 수 없고, 주민이 아닌 이상 드나들 일 없는 골목이다 보니, 길을 막고 있어도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몰래 남의 평상에 드러누웠다. 평일 오후의 서울 하늘이 조용히 펼쳐졌다. 새소리가 들렸고, 시내 한복판이었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한옥 마당에서 보는 하늘은 이런 모습일까? 조정구 건축가에게 한옥 마당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조정구의 건축들에는 마당이 등장하고, 또 마당의 나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어떤 형식으로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한옥과 같은 목구조 집의 장점은 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공간을 열 수 있고, 풍경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유리창과는 다르다. 한옥에는 공간적인 틀을 사용해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고, 또 창이나 프레임을 통해 내부의 공간과 풍경이 함께 보이는 구조를 만들어 풍경을 실내로 담아내는 방법이 있다. 자연이 편안함 속으로 들어오는 거지.


 

↑ 판교 함양재는 한옥과 양옥을 합체한 마당 집이다. 양옥과 한옥을 ‘ㄱ’자로 이어 붙였다.


하지만 한옥에는 현대 생활과 동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방범이나 지하주차장 같은 것들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큰 틀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본래 한옥에 없는 것을 기대하면 문제가 생긴다. 대지는 작은데 주차 공간을 원한다면 한계가 있다. 또 한옥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한옥마을에 골목을 넣으면 입주자들이 싫어한다. 골목 안쪽에 살게 되면 주차장과 멀어져 불편하기 때문이다. 꼴값한다는 말이 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인데,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 한옥은 냉난방, 전기통신, 방범 뭐 하나 안 되는 것은 없다. 현재 짓고 있는 한옥을 보면 위층은 전통적인 한옥 구조고, 아래층은 지하로 이어지는 차고가 있다. 지하는 현대적인 거실과 정원, 현관도 있어서 모던한 생활이 가능하다.

한옥은 우리 삶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옥을 규정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전통 한옥 목구조에 기와지붕을 얹은 것이다. 일반적인 기준이고, 지자체가 정하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너와집을, 제주도에서는 처마에 돌을 사용한 것을 한옥으로 본다.


 

↑ 판교 함양재는 외벽이 곧 건물이다. 외부에서 마당이 보이지 않아 사생활이 보호된다.


왜 사람들이 다시 한옥에서 살려고 하는 걸까?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옥이 재생산되면서 부흥하는 것 같다.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마당이다. 우리는 마당을 중심으로 생활해왔다. 자연의 일부를 잘라서 마당과 방을 구성했다. 시멘트 기와로 담장 집을 지어도 그렇게 살았다. 우리에게 그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아파트는 그런 점을 개선해 편의성을 갖추고 등장했다. 아파트의 거실을 한옥 마당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지만, 거실과 마당은 다르다. 자연하고 떨어져 있으니까. 우리 마당은 보는 용도가 아니라 쓰는 용도다. 마당을 통해 화장실에 가고, 이불을 널고, 잔치를 벌인다. 근엄한 일만이 아니라 상스러운 일도 했다. 현대 건축 역시 마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건축이든 한옥이든 마당은 우리 시대 집으로서 힘을 가질 것이다.

마당이란 실용적인 공간인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 다시 필요성을 느낀다는 뜻인가?
맞다. 최근에 작업한 소소원의 집주인은 조경을 배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마당 집을 만들었는데, 정원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웃집들은 미국식으로 마당을 비웠는데, 소소원은 건물로 마당을 둘렀다. 사적인 영역이 보장되면서 마당에서 영화를 보고, 애들과 놀기도 한다.


 

↑ 1.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가회동이다. 마당 중앙의 고목은 집 안 어느 곳에서나 보인다. 2. 지난해 설계한 은평 한옥이다.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차고를 만들었다. 지하주차장은 지하의 현대식 주거 공간과 연결된다. 3. 진관사의 오래된 초가를 대대적으로 수선했다. 기와들 사이의 초가는 깊은 시간성을 드러낸다.


사적인 공간을 보호하는 측면은 한국인의 성향과 잘 맞는 것 같다.
한옥은 마당 집이라는 점에 기반을 두고 출발했다. 마당 집에 사는 사람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유연하면 더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다. 주차 문제나 골목 문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옥의 전통만 고집하면 고생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마당이 있는 집의 형태가 한옥에 가까운 것일 뿐, 사람들이 한옥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한옥의 경험이 많지 않은 세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옥의 뉘앙스나 정신, 마당 집의 개념을 통해 충분히 자기 삶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통틀어 '우리다움'이라고 생각한다.


 

↑ 진관사 템플스테이 역사관은 약 760.3㎡ 규모의 현대식 지하 시설과 법당으로 구성했다.


설계할 때 집착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는 의뢰인의 현재 삶과 앞으로 삶의 모습을 알려고 한다. 삶의 의지에 맞춘 집을 만드는 데 집착한다. 두 번째는 마음이 편한 집이다. 건축적으로 훌륭해도 집주인이 힘들면 안 된다. 그리고 마당이다. 마당을 넣으면 앞서 말한 두 요소가 적절히 융화된다.

설계한 한옥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집은 어디인가?
지금은 은평 한옥인데, 하나 더 꼽자면 진관사다. 어려운 시기를 많이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 개인 주택은 1백 년만 사용해도 굉장히 오래된 것인데, 진관사는 천년 고찰이라고 부른다. 내 손주가 진관사를 증조할아버지가 설계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 테니, 그런 생각을 하면 꽤 괜찮은 작업인 것 같다.


 

↑ 진관사 템플스테이 역사관의 법당이다. 9m 크기의 거대 서까래를 이용해 단순한 구조로 만들었다. 천장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명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은평 한옥은 어떤 집인가?
지금 짓고 있는데,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다고 나름 자평한다. 작은 대지에서 주차 문제를 해결했고, 생활의 여러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심의에 유사품들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들었다. 현대 한옥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선구자라고 부르면 거창할까?
하하, 그렇게 부르니 옛날 사람 같은데.

+ 건축가 조정구
현대 건축가 조정구가 어느덧 한옥 건축가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의 최종 목표는 한옥이 아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집, 그러니까 우리 삶에 맞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한옥을 짓는 것은 단지 그가 의뢰받은 프로젝트 중에 한옥이 많기 때문이다.


◆ 권현효 삼간일목
한국패시브건축협회 이사다. 2013년에는 산청 율수원으로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올해의 한옥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산청 율수원은 약 2,644.6㎡ 규모의 대지에 8채의 한옥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서촌은 동이 참 많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복잡한 골목들은 낯선 곳에서 시작해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어진다. 집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지라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도 없다. 자동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권현효 소장을 따라 골목 깊이 위치한 누하동 한옥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약 49.6㎡ 규모의 작은 집이지만 둘러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작은 공간이 여러 층으로 구성되었고, 세세한 특징과 구조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학교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으나 풍경은 조용하고, 멀리 경찰청과 남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외부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으나, 이곳에서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툇마루에 앉으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였다. 오는 길은 불편했지만, 머무는 동안은 평화로웠다. 환경에 삶을 맞춰가는 것이 한옥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권현효 소장의 철학이 느껴졌다.


 

↑ 산청 율수원은 전통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사대부의 사상을 건축에 녹여냈다.


한옥 건축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의 건축가가 한옥을 설계하지 못하면 누가 하겠나?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화재가 아니라 생활형 한옥을 만들려고 했다. 답사도 하고, 시공 도면을 보며 연구도 하고, 현장에서 목수들과 이야기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생활형 한옥과 기존 한옥은 어떤 차이가 있나?
기본 목구조는 과거와 같고, 공법의 차이다. 예전에는 벽체를 구성할 때 대나무나 갈대를 넣고 황토 진흙을 발라서 만들었다면, 지금은 시멘트 벽돌을 쌓아서 미장한다. 나는 단열을 위해 단열 벽체를 만들어서 끼워 넣는다. 공간과 재료, 기술적인 변화다. 나머지 구성이나 목구조는 동일하다. 한옥은 오래 세월을 거쳐 완성해온 건축 양식이다. 그동안 쌓아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둥과 창호의 크기, 목구조 방식 등을 하나만 달리해도 전체가 어색해진다. 작은 것부터 큰 부분까지 조화로워야 한다.


 

↑ 누하동의 한옥 대수선이다. 골목에서부터 계단, 대문, 마당, 대청 등으로 이어지는 레벨이 다양하다.


현대적인 요소를 한옥에 채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어색한 부분들이 드러나는 건가?
관점이 다른데, 전통을 기본으로 한다면 전통적인 요소 90%, 현대적 요소를 보이지 않게 10% 적용하면 어색하지 않다. 그 반대가 되면 어색하고. 한옥의 공간적 특성을 현대 건축화하는 것은 괜찮다. 한옥을 지향하면서 애매하게 현대 건축적인 요소를 반영하면 균형감이 무너진다.

한옥을 설계할 때는 주로 무엇을 고민하나?
관계성이다. 한옥의 구조는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수한 관계가 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외부 공간을 포함한 건물이다. 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또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관심이 많다. 한옥은 지면과 레벨 차이가 많다. 마당 위로 계단이 있고, 계단 위로 방이 있다. 방에서는 누마루가 더 높다. 또 다락이 있는 경우도 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다양한 레벨들이 있고, 각각 고유의 역할이 있다. 또 그 레벨에 따라 우리의 행동 양식도 달라진다. 이러한 단순함 속의 미묘한 변화들이 재미있는 풍경을 만든다.


 

↑ 1. 산청 율수원의 바깥사랑채다. 누마루는 화려하다.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기도 하다. 2. 누하동 한옥의 문은 출입문이자 창문이다. 턱이 높아서 공간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하고, 팔을 괴고 밖을 쳐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도 한다.


한옥은 요즘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주차 문제와 같은 것들 말이다.
도시는 필지가 좁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없다. 한옥마을은 차고를 들여 보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옥에서 살려면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우리는 편리함을 추구하지만, 한옥이 추구하는 것은 편안함이다. 개념이 다르다. 한옥은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소통하는 주거 형태다. 한옥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한옥은 좁아서 많이 비워놓아야 한다. 많은 걸 버리고, 삶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

누하동 한옥은 마당이 학교 운동장과 이어져 풍경이 시원하다. 그럼에도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한옥은 밀집되어도 'ㄷ'자나 'ㄹ'자 구조를 채택하면 앞집의 담과 지붕만 보인다. 좁지만 외부에서 마당으로 들어왔을 때는 나만의 공간으로 읽히거든.


 

↑ 1. 누하동 한옥 대수선의 마당이다. 한옥 마당은 각 공간들을 연결시켜주는 중심이다. 2. 현재 서촌에 짓고 있는 한옥이다. 하나의 대지에 한옥 4채가 서로 다른 출입구를 갖고, 명확히 분리된다.


그런 점이 한옥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건가?
작은 마당이 그런 역할을 한다. 도심의 한옥 마당은 규격화된다. 마당도 하나의 방이다. 하늘이 열린 방이다. 한옥은 대문채를 통해 마당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방이 곧 마당이다. 마당에서 놀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아파트처럼 건물로 먼저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한옥이 보유한 장소를 먼저 들어가고 나서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모든 방은 마당을 중심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마당을 통해 각 방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외부를 경험할 수 있고,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각 공간은 구별되지만, 문을 전부 열면 모든 방이 하나로 연결된다. 그래서 재미있다. 한옥의 구조 덕분에 소통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맞춘 공간이 아니라 공간에 맞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인가?
공간이 사람을 그런 삶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한옥과 같은 공간이 가진 특성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한옥에 살면 마당을 자주 나갈 수밖에 없다. 비가 오거나 햇살이 좋을 때 툇마루에 앉아서 사색하게 될 테고, 또 한옥이 그런 행동을 유도한다.


 

↑ 산청 율수원의 바깥사랑채다. 다양한 수납공간이 눈에 띈다.


시도하고 싶은 한옥도 있나?
한옥과 현대 건축물이 만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다. 한옥과 현대 건축물이 서로의 특성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재미있는 구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

한옥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니까. 낯설게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건축가가 지켜야 할 양식도 있는 반면에, 공간적인 특성을 활용해서 새로운 한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건축사 권현효
시작은 현대 건축이었고, 관심은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패시브하우스로 이어졌다. 그가 한옥을 짓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고, 한국 건축가라면 한옥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한옥의 하이브리드에 대해 고민한다.


◆ 이상길 | 예록
그가 짓는 한옥은 넓은 대지에 있다. 그는 주로 천연 소재인 흙, 나무, 종이, 돌을 사용해 건축한다.

 

↑ 양평에 위치한 그의 건축사무소다. 긴 담벼락은 반듯하게 자른 기와 와편으로 만들었다.


도 시 밖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건축가 이상길의 사무소는 경기도 양평에 있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양평으로 향했다. 서울을 빠져나오고, 유럽풍 펜션들을 지났다. 좁은 도로를 따라 낮은 산길을 올랐다. 집들은 띄엄띄엄 위치하고, 낮은 지붕과 넓은 마당의 주택들이 나타났다. 이상길 소장은 자신이 지은 한옥에 거주했다. 사무실이 곧 집이었다. 산자락에 위치한 그의 한옥은 굳이 내비게이션을 확대할 필요 없이 눈에 띄었다. 도심형 한옥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위 시선을 피하기 위해 건물로 마당을 감쌀 필요가 없었다. 잔디가 깔린 넓은 대지에 'ㄷ'자 한옥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한옥의 배경은 산이었다. 긴 앞마당은 낮은 담으로 획을 그었고, 담에는 기와들이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주차 문제에 대해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넓은 마당 한편에는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문이 별도로 있었다. 아이들이 놀러 오는지 어린이 자전거와 축구공도 있었다. 도심형 한옥과는 달리 드러내는 한옥이었다.

 

↑ 기와와 서까래 사이에는 30cm 높이의 황토가 쌓여 있다.


요즘 시대의 생활 방식에 맞는 한옥이라면 어떤 것일까?
음, 우선 북촌 한옥마을 같은 것은 지금 시대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지을 당시의 시대에는 맞았겠지만. 춥고 동선이 불편하다. 현대 한옥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으려면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아파트 문화에 익숙한데, 억지로 한옥에 생활을 맞추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한옥을 우리 시대에 맞게 개선할 필요성은 있지만, 유지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다.
한옥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을 고수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그래도 전통적인 요소들 중에는 본받을 점들이 있다. 우선 사용하는 소재다. 한옥은 천연 소재를 사용한다. 돌, 종이, 나무, 흙 이런 소재들 말이다. 자연 소재와 최신 기술력이 합쳐져서 좋은 결과를 낸다. 또 천연 소재를 사용하면 건강에 더 좋다. 물론 콘크리트나 시멘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교적 적게 사용한다.


 

↑ 바닥에는 온돌 마루를 사용했다.


설계 단계에서 중요하게 보는 점은 무엇인가?
창호다. 흔히 살이 많은 창을 가리켜 완자살이라고 한다. 과거는 창호지를 바르기 위해 살을 많이 달았다. 그런 점이 아름답기는 하다. 하지만 창호의 기능은 단열과 직결된다.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단열도 높이는 방법을 찾는다. 주로 유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는 구들장이 보이는데, 난방은 어떻게 해결하나?
하하. 난방은 보일러를 사용한다. 온돌 마루가 있는데, 굳이 예전 마루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겨울에 춥게 살고 싶지는 않다.


 

↑ 1. 툇마루가 없는 대신 드나들기가 수월하다. 2. 거실의 모습은 일반 아파트 거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고 사는 것처럼 말인가?
실제 한옥에서는 에어컨을 틀 필요가 별로 없다. 한옥 지붕은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서까래 위로 콘크리트가 아니라 황토를 30cm 높이로 올린다. 기와 밑의 황토가 공기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문제는 지붕만이 아니다. 벽도 흙벽돌로 쌓고, 치장한다. 그래서 외부의 열이 내부로 들어오지 않는다. 반대로 겨울에는 냉기를 흡수하지 않고.

넓은 대지의 한옥은 도심형 한옥과 다르다. 도심형 한옥의 마당은 중정 느낌이 강하다면, 이곳의 앞마당은 옆과 뒷마당으로 이어진다.
도심형 한옥의 마당이 중정인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이유가 크다.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당시에는 그런 집 구조를 선호했다고 한다.


 

↑ 1. 현대식 건축물들과 연결되는 한옥의 입체 조형물. 2. 대지가 넓어 마당을 둘러싸는 구조를 고집하지 않는다.


의뢰받으면, 어떤 점을 먼저 살펴보나?
설계에 앞서 먼저 살피는 것은 지형이다. 특히 우리는 산이 많기 때문에 그 지형에 맞춰 설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 12년 전에 한옥에 빠졌다. 하지만 막상 살려고 하니 못 살 것 같더라. 평면부터 구조가 굉장히 불편했다. 그래서 현대 건축과 한옥을 함께 공부했다. 10년 전에는 한옥을 구입해 뜯어보고, 다시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옥은 다른 건물에 비해 건축비가 비싸지 않나?
소재 때문이다. 현대 건축은 수직 수평으로 건물을 올린다. 처마가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옥은 지붕면이 바닥 평면보다 1.5배 넓다. 소재가 더 들어가고, 전부 수작업이다. 그래서 한옥은 똑같을 수가 없다. 기와 와편만 해도 일일이 자른다. 하지만 한번 잘 만들면 오래간다. 천년 사찰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리모델링할 필요 없이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물론 현대 건축도 고급 소재를 사용하면 비싸지는 건 마찬가지다.


 

↑ 마당은 빨래를 널거나, 식사를 하는 장소의 역할도 한다.


작업한 한옥 중에서 애착 가는 건물이 있나?
1980년대 지어진 한옥을 복원한 적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폐가 수준이었다. 의뢰인이 복원해달라고 했다. 사실 의뢰인 주변 사람들은 재건축하라고 말렸다더라. 누가 봐도 폐가였거든. 하지만 의뢰인은 선조가 물려준 한옥이라 복원하고 싶어 했다. 완공 후 어렸을 적 살던 집 모습 그대로라면서 만족했다.

남자 혼자 살기 좋은 한옥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 건축과 다르지 않겠지? 편리함이다. 또 방해받지 않아야 하니까 공간 구별이 명확해야 하겠지. 대지는 작더라도 공간은 다양해야 한다.

+ 건축가 이상길
그의 한옥들은 도심의 한옥들과는 다르다. 전통적인 한옥과도 다르다. 하지만 기와와 목구조를 사용한 분명 한옥이다. 그의 한옥은 넓은 대지에 건축하기에 덜 제약받고, 오늘날 생활 방식에 맞추기에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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