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즈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흑인과 재즈가 떠오르는 곳이다. 뉴올리언즈는 재즈가 태어난 곳이다. 그곳은 즐비한 펍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길거리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 곳이 뉴올리언즈란다. 모두들 콜라 마시듯 칵테일과 맥주를 마신다. 뉴올리언즈에서는 날마다 공연이 있다고한다. 루이지애나주 최대 도시지만 늘 천재지변에 시달리는 곳이다. 낮은 삼각주 지형이있어 홍수 해도 심했다.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이 도시는 현재 미국의 2대 항구 중 하나로 라틴 아메리카 무역의 중심지이다. 이곳 역사는 복잡하다. 이곳은 식민지였다.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총독이 1718년 발을 디딘 이후 프랑스 식민지의 중심지로 발달한 도시였다. 하지만 역사의 굴곡이 심했다. 이후 스페인 령이었다가 다시 프랑스 령이 되었고, 1812년 드디어 미국에 편입되었다.

뉴올리언즈의 거리는 낡고 헙수룩한 카페며 공연장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특히 전설적인 재즈 연주가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한 프리저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도 자리한다. 잭슨 광장을 가운데 두고 세인트루이스 대성당, 재즈 박물관 등이 있으며 프렌치 마켓 등 볼거리가 모여있다.

뉴올리언즈의 가장 큰 관광지구는 프렌치쿼터다. 프렌치 쿼터는 1700년대 초반 프랑스인들이 처음 개발한 곳이다. 이 쿼터의 커넬 스트리트 (Canal Street) 부터 약 1km 거리가 버번 스트리트다. 버번 스트리트 (Bourbon Street) 는 곧 재즈의 거리다. 버번 스트리트 중 핵심 도심에 가장 가까운 (Upper Bourbon Street)가 핫 플레이스다.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수 쪽의 오래된 도심이다. 불어로 비유 카레(Vieux Carré) 네모난 프랑스 지구라고 한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거리가 버번 스트리트다. 버번 위스키를 홀짝이며 재즈로 엉기어드는 부르봉의 거리다. 버번은 프랑스 부르봉을 말한다. 부르봉 왕조는 태양왕 루이 14세 같은 절대군주가 있었다. 그 식민의 잔재가 남은 것이다.

뉴올리언즈는 오늘날 1천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년 찾는다. 재즈 발상지로, 2월마다 열리는 마디그라 축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

재즈는 미국에서 노예로 살던 고된 삶의 흔적이 고스란한 음악이다. 흑인 민속음악과 백인 유럽 음악의 자식이다. 뉴올리언즈는 세계적인 목화 수출 항구였다. 노예의 손이 많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흑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뉴올리언즈 흑인 브라스밴드는 백인 밴드를 카피해 유럽음악 연주 방식을 따르다가 자신들의 색을 더했다.

재즈의 탄생지, New Orleans Jazz라고 하면 보통 1910년~20년대 흘렀던 소박한 재즈를 말한다. 당시 연주자들은 가곡인 블루스도 악기로 소화하였으며 악보를 읽을 줄 몰라도 타고난 음악감으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처음 재즈가 생겨났을 때는 흑인의 재즈가 뉴올리언즈 재즈였지만 20년대 들어서면서 흑인과 백인 재즈가 나뉘었다. 트럼펫, 클라리넷, 트롬본의 즉흥연주를 뉴올리언즈 재즈, 이 스타일로 백인들이 연주하면 딕실랜드 재즈라 한 것.

딕시는 미국 남부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후 1940년대 접어 들면서 두 재즈를 합쳐 Traditional Jass로 부른다. 지금 딕실랜드 재즈라고 하면 다섯 명 조금 넘는 밴드에서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합주와 솔로연주가 섞인 재즈를 말한다. 곡은 늘 낯익다. 초기 뉴올리언즈재즈 발달 시기의 인기 있었던 곡들을 많이 연주한다. 투 비트 재즈 two beat jazz 라고도 한다.

뉴올리언즈의 흑인 재즈연주가들은 홍등가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였고, 이후 홍등가가 사라지고 시카고, 뉴욕 등으로 옮겨갔다. 재즈는 옮겨간 지역 색깔을 흡수했다. 시카고 스타일이 탄생했고 뉴욕에서는 빅밴드가 인기를 끌었다. 백인 빅밴드도 생겼다. 이 후에 흥겹고 신나는 댄스의 색깔을 가진 스윙이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다양한 연주자가 나오고 재즈의 깊이도 깊어졌다.

뉴올리언즈,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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